[FC] 동키콩 (Donkey kong) 1983 - [1] 개봉기

Famicom|2018. 3. 8. 20:11

 

닌텐도의 첫 콘솔게임기인 패미컴의 런칭 타이틀인 동키콩 입니다. 1983년 발매되어 패키지에서 35년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리오와 동키콩의 외모가 지금 현재보다 많이 빈해 보입니다.

 

동킹콩은 마리오와 동킹콩이 동시에 데뷔했기 때문인지 더 유명한 마리오 시리즈의 일부로 간주되는 경향도 있습니다. 시리즈의 첫 작품인 1981년 아케이드용을 가정용 패미컴으로 이식한 작품입니다.

 

현 닌텐도의 대표이사겸 전무겸 개발본부장을 맡고있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첫 작품으로 큰 의의를 둡니다.

 

 

패미컴 초창기 롬 카트리지라는 표현보다는 롬 카세트라고 호칭합니다.

 

아케이드 판과는 달리 시작시 데모(동키 콩이 레이디를 메고 25m 상단에 올라가 바닥을 내려앉게하는 내용)가 생략되었습니다. 그리고 스테이지 클리어시 레이디를 메고 올라가는 모션 또한 생략되었습니다. 스테이지 클리어후 표시되는 25m 단위의 높이 표시 또한 삭제 되었습니다.

 

 

 

 

작고 콤팩트한 박스와 롬팩 그리고 심플한 메뉴얼의 조촐한 구성입니다. 박스, 롬팩, 메뉴얼이 모두 붉은 색을 기본으로 디자인 되어 있습니다.

 

 

초기 패미컴 카트리지들은 동일한 디자인에 색상과 이름만 다른 규격화된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1983년 출시된 동키콩, 뽀빠이, 마리오 브라더스, 동키콩 jr 등등 컬러만 다르고 동일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후 1984년 중반부터 게임롬팩들이 일러스트가 그려진 디자인으로 출시가 되기 시작합니다.

 

 

카세트 테이프의 녹음 방지탭과 비슷한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초기 패미컴 카트리지에 존재하는 이 구멍에 대한 소문은 열이 빠져나가는 구멍이다, 조립시 필요한 구멍이다, 줄을 통과시켜 걸 수 있는 구멍이다 등등이 있습니다.

 

 

1983년 7월 15일 패미컴 런칭당시 패미컴 정가는 14,800엔 동키콩은 3,800엔이 었습니다. 패미컴의 개발은 1981년 11월 당시 닌텐도의 사장인 야마우치 히로시가 게임 앤 워치의 성공이후 다음은 텔레비전 콘솔 게임기다 라는 말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일본내의 롬팩 방식의 가정용 게임기는 에폭사가 선두로 발매하고, 뒤이어 반다이와 토미등의 메이커들을 중심으로 신제품이 준비 중에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가정용 게임기들이 조이스틱을 기본으로 하였지만 패미컴이 게임 앤 워치의 +키를 기반으로 최초로 콘솔 게임기에 +키를 탑재 하게 됩니다.

 

 

롬 카세트라고 부르던 시절의 박스크기는 카세트 테이프의 케이스와 비슷한 사이즈입니다. 당시 콤팩트하고 친숙한 카세트 테이프를 모티브로 디자인과 크기를 정한 것 같습니다.

 

 

롬 카트리지 크기도 테이프와 두께에서 차이가 조금 있지만 크기면에서는 얼추 비슷합니다.

 

 

 

 

특히 녹음 방지탭의 디자인은 위치나 크기가 거의 동일합니다.

닌텐도 홍보부에서의 이 구멍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은 단지 아무런 기능 없는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80년대 초반의 인쇄물이라 일부 페이지에서 므와레 현상이 보이기도 합니다.

 

롬팩의 용량 문제로 아케이드 판의 컨베어 벨트 스테이지 (50m) 또한 삭제 되었습니다. 결국 오리지널 4면의 스테이지가 3면으로 줄어들고, 화약통도 보통이 통과 같은 그래픽으로 생략이 되었습니다.

 

통의 모션도 2종류로 줄어 들어 아케이드판과 무작위로 굴러오는 스릴은 많이 줄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아케이드 게임의 콘솔이식판은 대부분 그래픽이 완전히 다른경우가 보통이라, 이정도의 이식도는 당시로는 획기적으로 높은 이식도였습니다.

 

간단한 게임 룰에 비해 동시기의 게임들과 비교하면 비교불가의 게임성도 뛰어나고 캐릭터성과 스토리성도 높은 게임입니다.

 

 

아케이드 동키콩의 탄생 비화는 당시 유행하던 갤럭시안의 아류작인 레이더 스코프 수천대 제작하여  선편으로 미국에 수출하였으나 몇 달만에 미국에 도착하고 보니 유행이 지나 아무도 즐기지 않아 악성재고가 되었다고 합니다.

 

창고에서 썩고 있는 게임 기판에 게임 데이터 롬만을 교체하여 재출시하려고 사내 공모전을 열었지만 이 공모전에서 기획과의 디자이너 미야모토 시게루 이외에는 개발할 인력의 여유가 없어 거의 혼자 기획과 디자인을 하게 됩니다.

 

 

기본적인 조작방법 소개입니다. 최근의 게임 메뉴얼들과 구성이나 내용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처음 기획안은 뽀빠이 캐릭터로 이용하여 뽀빠이 원작의 구도를 살린 게임을 기획했으나 블루토(동키콩), 올리브(레이디), 뽀빠이(마리오) 캐릭터 저작권 협상이 난항을 겪고 계약이 이루어 지지 않아 미야모토 시게루가 동킹콩과 마리오를 직접 디자인하여 뽀빠이에서 동키콩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노는 방법 소개. 등장하는 캐릭터들과 게임의 규칙을 설명 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마리오는 빨간 셔츠에 파란 바지는 패션이지만 동키콩에서는 파란색 셔츠에 빨간 바지는 반대로 배색입니다. 처음 게임명은 funny kong, Stupid Kong, Crazy Kong등 다양했지만 Donkey Kong으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게임의 중요한 점프 테크닉과 보너스점수에 대한 설명입니다.

 

아케이드 동키콩이 대박이 나고 수십만 카피가 판매되자 이케가미 통신기社가 닌텐도를 상대로 1983년 저작권 침해로 닌텐도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게임의 기획과 디자인은 닌텐도에 의한것이고 모든 하청계약은 계약서대로 정상적으로 이행되고 지불된 상황이라 결국은 양자 합의에 의해 종결됩니다.

 

하지만 이케가미 통신기社는 뒷끝을 보여주며, 닌텐도에게 동키콩의 소스 코드를 넘기지 않아 후속작인 동키콩 주니어를 개발할때 닌텐도가 동키콩의 롬 파일을 디컴파일과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해야하는 지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 이후 이케가미 통신기社는 경쟁업체인 세가와 계약하고 동키콩 정통 진화형인 쿼터뷰 방식의 Congo Bong를 제작하여 납품합니다.

 

 

 

 

그 외에도 유명한 유니버셜 스튜디오와의 저작권 소송도 터지게 되죠.

 

아케이드판을 미국에 수출하여 인기가 폭발하자 영화 "킹콩"의 제작사인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표절을 이유로 고소를 하게 됩니다. 킹콩과 이름도 유사하고 거대한 고릴라가 미녀를 고층건물로 납치하는 스토리도 동일하기 떄문입니다.

 

하지만 재판도중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1976년판 "킹콩" 영화도 1933년 킹콩에 대한 저작권을 획득하지 않고 제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판은 역전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3년간의 긴 소송끝에 닌텐도가 승소하고 유니버셜은 오히려 닌텐도에게 막대한 피해에 대한 손해 배상을 하게됩니다. 이로인해 미국에서 무명이던 닌텐도는 오히려 세간에 유명해지게 되죠.

 

 

킹콩 재판에서는 최종적으로 동키콩과 킹콩은 전혀 관계 없다는 닌텐도의 주장이 인정되고 역으로 1986년 닌텐도는 유니버셜 영화사로부터 160만 달러를 배상받게 됩니다. 이 재판으로 하워드 링컨이 이끄는 NOA 법무부의 활약이 돋보인후 미국의 게임업계에서 닌텐도와 NOA의 발언력을 높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패미컴 동키콩 1983년 개봉기 동영상 ]

 

 

댓글()